초콜릿의 역사

초콜릿의 기원

코코아를 처음으로 조직적인 방식으로 경작하기 시작한 것은 마야인들이었습니다. 이 신성하고 전설적인 코코아 나무는 매우 귀중한 존재였습니다. 그 열매는 일종의 화폐로 쓰였으며 강장제이자 영양 음료의 재료로도 사용되었습니다. 톨텍인에 이어 아즈텍인들도 코코아 재배를 시작하면서 중미 전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습니다.

스페인, 초콜릿을 발견하다

1502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과나하 섬에 상륙하면서 “신들의 음료(elixir of the gods)” 맛을 본 첫 번째 유럽인이 되었습니다.

1521년 이후로 초콜릿은 쿠바에서 베네주엘라까지 스페인령 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퍼져 자리를 잡았습니다.

초콜릿이 스페인에 알려진 것은 1527년 이후로 주로 수녀원과 수도원에서 사용되었는데 바티칸에서 오랜 금식 기간 동안에도 사용을 허락했습니다.

곧 초콜릿의 뛰어난 영양적인 특장점은 순식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레시피가 한층 세분화되어 초콜릿을 다양한 맛과 질감으로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럽을 침공한 초콜릿

프랑스를 위시한 전유럽에서 초콜릿이 크게 유행하면서 격론이 벌어졌는데 이 새로운 대유행으로 인해 초콜릿은 때로는 숭배되었고 때로는 죄악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예를 들면, 세비뉴의 후작부인(Marquise de Sevigne)은 초콜릿의 풍부한 영양과 소화에 도움을 주는 특징들을 치켜세우며 찬양했다가 초콜릿이 심계 항진을 불러오고 또 매우 비싸다는 이유로 힐난을 듣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초콜릿이 크게 성공할 수 있었던 데는 초콜릿이 최음제 역할을 한다는 주장도 한 몫 했습니다. 순수한 쾌락으로 인해 죽을 수도 있다는 얘기가 나돌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초콜릿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완전히 타락했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습니다.

bgHistoireDiapo_4초콜릿 혁명

17세기 말이 되자 프랑스 여기 저기에 초콜릿 공장들이 생겨 났습니다. 프랑스의 제과사들은 특별한 초콜릿을 만드는 기술을 연마하는 한편으로 프랑스가 마르티니크 섬, 과들루프 섬, 가이아나, 세인트 도미니크와 교역하게 되면서 직접적인 코코아 공급처가 확보되었습니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초콜릿이 등장하기 시작해 네덜란드에서는 코코아분말을 포함한 가루 형태의 초콜릿이, 스위스에서는 잘 녹는 바 형태의 밀크 초콜릿이 선보였습니다.

19세기와 20세기 사이에, 산업화와 세금의 감소 그리고 운송 수단의 발달이 초콜릿 혁명의 문을 열었습니다.

초콜릿 제품의 폭발적 성장

20세기에 들어서며 색다른 충전물이 들어있는 한 입 크기의 초콜릿, 초콜릿 바, 초콜릿 봉봉, 가나슈 및 커피와 함께 먹는 초콜릿 스퀘어 등 초콜릿 제품들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발로나를 비롯한 세계적인 초콜릿 회사들의 상당수가 이 시기에 설립되었습니다. 1922년, 로네 벨리의 제과사였던 기론네(Albéric Guironnet)가 비바레 초콜릿 공장을 설립했고 이 공장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발로나가 되었습니다.

기론네는 처음부터 “최고를 만들기 위해 최고를 사용한다.”는 기본 원칙을 고수했고 그가 회사를 설립하고 거의 100년이 지난 후에도 이 가치는 여전히 발로나가 하는 모든 일의 중심에 깊이 남아 있습니다.